시평

 
....subject >>  오마이 뉴스에 보낸 반론문
.....name >>  유재완 http://www.logschool.co.kr()
.....date >>  2005/2/2 (20:8) ....hit >>  2239
....ip>>  218.156.146.195

심 기자님,

오늘 쓰신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취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오웅진 신부님을 만나지 못한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저는 1982년 이후 신부님과 인연을 맺고 있는 한편으로 꽃동네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발전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저는 오 신부님과 나이도 거의 같으며, 가톨릭 신자이기도 합니다.

저와 제일 가까운 치과의사 친구는 1983년부터 작년 말까지 거의 20년간을 매월 두 차례씩 방문해서 무료진료를 했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꽃동네와 인연이 깊습니다.

저는 일반 신자들처럼 성직자를 무비판적으로 존경한다거나 교회의 가르침을 비이성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웅진 신부님에 대해서 때로는 비판적인 생각도 하고, 조언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오마이 뉴스의 보도로 알려진 오신부님의 혐의에 대해서는 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저는 그 분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꽃동네를 크게 이루려는 욕심이 그와 같이 사회에 비추어진 것으로 믿습니다. 그 분에게 그와 같은 원대한 꿈과 욕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꽃동네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불도저 같은 투지와 용기가 그 동안의 큰 난관을 극복하고 꽃동네라는 큰 사회복지시설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 투쟁과정을 거치면서 주변 사람들과 왜 마찰이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교회 내에서 질시하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꽃동네에서는 사랑의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천대 받고, 버려지고, 가족마저도 돌보지 않는 병든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영적 도움도 제공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야 할 일을 꽃동네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하고, 죽기까지 돌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꽃동네의 식당과 주방에 가보셨는지요? 저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것을 보며 그 많은 양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일 먹는 식사비, 그 큰 시설을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유류비, 건강을 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의료혜택, 이 모든 것이 정부 보조금이나 사회복지기금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오 신부님은 "큰 거지" 입니다. 그와 같이 큰 경비를 어떻게 조달합니까? 그는 우리 사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돈을 얻으러 누구에게라도 그리고 어디라도 달려갈 것입니다.

그 동안 이 거룩한 사회사업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매월 회비를 내고, 그것이 꽃동네를 운영하는 큰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 뉴스의 기사가 꽃동네를 사랑하는 회원이나 회원들께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큰 충격과 실망을 주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와 같은 보도를 마치 재벌의 비리를 파헤친 것같이 헤드라인으로 장식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몸을 던져서 일생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한 사제 이전의 한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직 확인이 되지도 않은 의문을 꽃동네의 “특수환경”을 감안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좀 더 분별 있는 보도가 불신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아직도 불의와 부정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꽃동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봉사자들과 남녀 수도자들의 헌신적 봉사와 신앙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보수도 없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려고 집을 떠나서 멀리 그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꽃동네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실망시키지 맙시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보도는 마치 꽃동네가 판도라 상자같이 우리 사회에 비쳐질 것이고, 꽃동네를 돕는 사람들과 그 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실망을 안겨줄 뿐입니다.   

제가 1982년에 처음, 오신부님을 만났을 때는 저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그분의 (당시는 무극성당의) 사제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분의 방에는 오랫동안 입어서 반들반들해진 수단(사제복) 두 벌 정도와 작은 책상 위에 있던 책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그 분에게서 받은 가톨릭 사제의 청빈함이 제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한가지입니다. 그 분은 꽃동네에서의 생활에서도 결코 청빈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청빈합니다.

이번의 사건이 꽃동네의 발전에 전화위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편으로 오마이 뉴스가 보도에 좀 더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1월 24일

유 재 완 (토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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